2026년 부활 성삼일 강론
- OLIVETANO KOREA

- 4일 전
- 3분 분량
2026년 4월 2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우리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 참 많이 참고 삽니다.
참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참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답을 주십니다.
‘만찬 때의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유다의 발까지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온정성으로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앉으시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주님께서는 매를 수없이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절한 육체의 고통도 참으셨고 또 엄청난 배신감과 정신적인 고통을 다 참으시면서 배신자 유다의 발까지도 정성스럽게 씻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못 참을 이유가 있습니까?
2026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강론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님 부활을 큰 기쁨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만드실 때 사람도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종’이나 노비 또는 단순한 말동무가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친구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이런 마음을 모르고 배신하고 이용하고 배척해서 자신을 스스로 불행에 빠뜨리고 지옥에 가는 준비만 착착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이런 배신에도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시어 경고하시고 길을 가르쳐 주시고 벌도 주시면서 인간을 생명의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배신과 악랄함, 간교함은 도저히 치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느님 자신이 인간이 되시어 인간 스스로는 치유할 수 없는 죽음의 병을 당신 손수 지시고 사람을 대신하여 갚으시고 사람을 다시 살리시기로 작정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오만함과 위선은 사람으로 오신 이 하느님까지 거짓 예언자, 정치 선동자, 사기꾼으로 몰아서 죽여버렸습니다.
도대체 주님께 무슨 죄가 있어서 온몸의 살점을 다 뜯어내고 뼈를 으스러뜨리고 숨도 못 쉬고 질식하게 해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죽음을 겪도록 하는지 인간의 악독함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합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파렴치하고 악랄하며 배신밖에 모르는 이런 인간이 어디가 예쁘다고 또 용서하시고 살리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우린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뻐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이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끔찍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부활케 하기 위함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죄밖에 지을 줄 모르는 우리를 부활시키려 하신 주님을 찬미합시다.
다시는 이 좋으신 주님을 아프게 해드리지 맙시다.
주 예수님!
비참한 저희를 다시 구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온 천하 만민들아!
주님의 부활을 찬미하여라!
아멘.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강론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사순절 긴 시간 동안 오늘을 기다려왔으니 우리 서로서로에게 따뜻한 부활 인사를 건넬까요?
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의 증거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빈 무덤도 부활의 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부활은 우리가 증명할 사건이 아닙니다.
교회의 선포를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사이비 종교에서 강요하는 것처럼 아무런 근거 없이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나 개인의 신앙이 아니고 교회 전체의 신앙입니다.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이라고 교회의 권위로 보증하고 선포해 주지 않는다면 다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는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직자, 수도자의 존재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를 수는 없겠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손발이 되어 당신과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둘째는 순교자들의 존재입니다.
부활하시지 않은 주님을 부활했다고 거짓을 고백하면서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수백만 명이 됩니다.
부활이 거짓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성인들의 존재입니다.
성인들은 수많은 희생과 기도를 바치면서 애덕을 실천하고 삶으로서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증명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도 사람인데 왜 편안한 삶을 버리고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매일 걸으면서 고통받으면서도 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을까요?
살아계신 주님의 성령께서 그분들께 위로를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넷째는 교회의 존재입니다.
교회가 2천 년 동안 참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아직도 건재합니다.
많은 위대한 국가들도 500년, 1,000년을 못 버티고 다 망했는데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계시면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과연 교회가 아직도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다섯째는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거입니다.
다락방에 있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심,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토마스 사도에게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하심, 시신이 없는 빈 무덤 등.
부활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있어도 그것이 참이라고 아무도 보증을 해주지 않는다면 속임수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가 그 권위로서 성경 속의 부활 사건은 참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의심 없이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달에 가보지 않았어도 천문학자들이 연구해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38만 4천 킬로미터라고 발표할 때 천문학자들의 학문적 권위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부활을 체험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못 뵈었어도 교회가 권위로서 주님의 부활은 진실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의심 없이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교회의 신앙이지 개인의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선포하면 그것을 사실로 믿고 받아드리는 것이지 내가 믿겠다, 못 믿겠다고 해서 그 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