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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탄생예고 대축일 강론(유 야고보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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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시간 10분가량)


유 야고보 아빠스님의 강론


오늘은 대단히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날이고 구세주께서 잉태 되신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갈릴레아 지방 나자렛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일상에서 겪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천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악마는 봐도... 천사를 본 일이 없습니까? 저는 천사 같은 사람들을 본 적은 있지만 천사를 직접 보지를 못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이 세상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건이 생길 거라는 뜻입니다.


천사가 처녀인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인사말을 먼저 하고 그 다음 엄청난 일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을 마리아가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은 예수라고 불릴 것이며, 그는 다윗의 왕좌를 가지고 그 왕권과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라는 선포입니다. 이스라엘 전승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모든 것을 공유하며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곧 이제 마리아는 인간이 아닌 성령을 통해 하느님과 똑같은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낳는다는 선포입니다.


신이 인간 모양으로 변장을 하고 온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있지만 하느님이 인간의 아들로 그것도 갓난아기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그 어떤 민족의 설화나 신화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사건입니다. 이는 인간 역사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전대 미문의 사건입니다.


<수태고지>


이 사건을 선포 받은 당사자인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매우 놀랍니다. 시골 처녀에 불과한 자신에게 천사가 나타나 인사를 하니 말입니다. 천사의 그 다음 말은 더욱더 놀라게 합니다. 남자를 모르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아기를 낳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묻습니다. 거부나 반항이 아니라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처녀인데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아닌 성령의 힘으로 그렇게 될 것이며, 하느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천사의 대답을 듣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으니 온전히 믿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리아는 오직 하느님만 찾고 그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동정녀로 살면서 평생을 성전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꿈도 자신의 모든 뜻과 의지를 오르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데 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제 이 결정으로 인해 마리아 앞에는 수많은 역경이 기다리고 있고, 실제로 아드님의 죽음까지 겪지만 마리아의 마음은 은총과 평화로 가득 차 있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택한 사람의 특징은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을 해도 큰 성과를 거둡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택하지 않고 자기 뜻을 택하는 사람은 항상 불안합니다.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그리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면 손해를 보지 않을까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서 항상 의심하고 배반하고 이리로 저리로 왔다 갔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변함없으신 하느님 안에 내린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건에서 연장해서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인 12사도의 모습을 한번 보겠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대조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을 탄생에 대한 선포를 듣고 이성과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후로는 다시는 변함이 없이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고 하느님만 찾습니다. 열두 제자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아버지와 배와 집과 가족과형제 자매와 토지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관심사를 따랐습니다. 자신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무식하고 말도 잘못하는 자신이 말 잘하고 청중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는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출세하겠지 하고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훗날 예수님이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하나는 오른쪽에 또 다른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을 기대하고 따랐습니다. 혁명당원 시몬은 예수님을 통하여 로마 제국의 압제를 물리치고 독립된 이스라엘을 쟁취하기 위해서 따랐습니다. 이스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돈주머니를 채우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기 위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사도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 같았지만 실상 버린 것은 하나도 없었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도구로 이용한 것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잡히시자 자신들의 목적이 실패로 돌아간 줄로 알고 모두들 도망쳐 버렸습니다. 배반을 한 것이죠.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헷갈렸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그 후 성령을 받고 나서는 모든 것이 평화스러워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힘들었던 예수 따름이 이제는 너무나 즐거운 일이 되었고,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평화로 가득 찼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한 사람은 모두 이런 평화를 누립니다. 자,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특히 우리의 모든 뜻과 의지와 또 성향까지 버리고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이익이 있을 때만 따르고 이익이 없으면 언제든지 버릴 생각입니까?

수도자들과 봉헌자들은 순명을 약속합니다. 기분 좋고 내 이익이 있을 때만 순명하고 기분 나쁘고 내 뜻에 안 맞고 손해 볼 것 같으면 불순명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싫건 좋건 우리는 성모님처럼 나의 모든 뜻을 버리고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순명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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